세상 제일 밑바닥에 발을 딛고 사는 미물이 넘보기에는 너무 높은 그 산은 마치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뿌연 구름을 허리에 둘러 형상을 감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산 정상에는 해와 달에 가장 가까이 닿아 그 기운을 담뿍 머금고, 오욕칠정에서 벗어난 신선과 선녀들이 멱을 감으며 노닌다는 호수가 있다 하였다. 호풍환우를 장관...
"뭐예요, 선배. 또 떨어졌어요?" "응…." "웬일로 전화해서 불러내길래 이번에는 좀 좋은 소식 가져오나 싶었는데, 표정만 봐도 바로 알겠네." A는 거의 한 달 만에 선배의 연락을 받고 학교 정문 앞 작은 카페로 나왔다. 카페에 들어가기 전,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안을 살펴보니 즐거운 얼굴로 담소를 나누거나 노트북을 펼쳐두고 무언가에 집중 중인 사람들과...
꿈을 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나 지났지만 꿈속에선 아직 교복을 입고 있었다. 주위 면면을 살펴보니 2학년 때인 듯싶었다. 당장에 소리 내어 부를 수 있는 얼굴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름도 떠오르지 않고, 몇몇은 생김새조차 뚜렷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서자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어느덧 3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쌀쌀했기에 빨간 목도리를 꺼내 교복 위에 둘렀다. 집에서부터 몇 번이나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비쳐 본 새로운 교복과 눈에 보이는 건물도 나무들도 전부 색다른 등굣길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강당은 중학교 때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학생 수가 차이 나는 만큼 크기는...
개전 이후 웨일 왕국은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기습적으로 선전포고한 입장이었지만 브리 왕국의 대비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철저했고 소국이었던 웨일은 뚫어낼 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자랑이던 풍요로운 밭은 불타 없어지고 연이은 패전에 국민과 군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다. 패전을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왕은 홀린 듯, 미친 듯이 전쟁의 국면보다는...
"아버님, 왜 출전 명령을 내리지 않으십니까?" 매끈한 대리석과 금과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방. 중앙에 놓인 용을 품은 커다란 의자는 앉아있는 자의 고귀한 신분을 누구나 알게 해 준다. "모두 나가 있게." 의자의 노인이 위엄있는 말투로 가볍게 손짓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우 나란히 열병해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돌아서 퇴장했다. 문이 닫히고 이내 조용해지...
대세는 백합 마이너 갤러리 - 욕망의 백일장 참가작 백일장 기반 세계관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99023 ------------------------------------------------------------------------------------...
넓은 공간 안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불빛도 하나 없고, 저 높은 곳에 뚫린 창문 하나에서 비춰오는 달빛이 유일한 광원이다. 네 귀퉁이의 기둥에는 금색 고래가 장식되어 있고 천장부터 바닥까지 하늘하늘한 분홍색 레이스로 화려하게 장식된 침대는 누가 보기에도 그 곳에 누워있는 소녀가 귀한 몸이란 것을 알게 해준다. 달빛이 소녀에 발 끝에 머무르고 시...
원래는 흰색이었겠지만 색이 바래 베이지로 보이는 벽지. 그 위에 걸린 시계는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계가 내는 소리에 맞춰서 흔들리는 침대가 끼익, 끼익 신음을 낸다. 아니다. 신음은 내 입에서 터져나왔다. 네 손이 가슴께부터 배를 타고 어루만지며 내려가자 오싹한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다른 손이 가슴을 자극한다. 혀가 젖꼭지에 닿자 그에 ...
이제 와서 말하기도 쑥스럽지만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자 근본적인 욕망이고 그렇기에 이런 시궁창 속에서라도 불특정 다수가 모인다면 어디선가는 싹 트는 거겠죠. 개인적으로 사랑의 싹이 제 가슴속에서 피어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삶을 짓누르는 고난 속에서 지켜낸 사랑은 얼마나 고귀하고 성스...
어느 때보다도 잠들기 힘들었던 어젯밤에는 꿈속에 항상 나오던 소녀의 모습이 아닌 성인 여성의 실루엣이 나왔다.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성. 아무 말 없이 한 걸음씩 다가간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등에 포갠 두 손에 무언가가 닿자 그녀가 힘없이 스러져내린다. 내게서 벗어난 그녀의 몸이 바닥에 부딪힘과 동시에 꿈에서 깼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그...
때때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희미한 약품 냄새에 감싸여서, 걸친 백의도 반쯤은 흘러내린 채로 창문에 기대어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난 뒤 수업이 시작되면, 보건실은 다시 조용해진다. 복도에서 떠들던 학생들의 목소리까지 그치면 시계 초침만 흔들릴 뿐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누군가 넘어져서 지루함을 깨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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