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갈 채비를 하며 습관적으로 킨 텔레비전에선, 최근 가장 화제인 유성우에 대한 뉴스가 한창이었다. 꽤나 유명한 천문학자로 보이는 남성은 굉장히 열을 올리며 몇 백년에 한 번 온다는 기회라던가 예상 궤도 같은걸 시청자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고 있었고, 다른 채널에서는 예상 시각과 날씨 같은 걸 전망하느라 바빴지만, 나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전원을...
내 나이프가 너의 심장에 꽂혔던 것이 첫 번째였다.너와 같지만 또 달랐던 너였던 것들과 같게 처음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블래스터의 섬광이 너의 머리에 구멍을 낸 것이 여덟 번째였다.가볍게 던진 나이프 조차 피하는 것을 버거워했던 너는 이번에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드러졌다.수 많은 뼈에 꿰뚫려 쓰러진 너를 보는 것은 스물 세 번째 즈음이었다....
어릴 적 길거리에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집에 데려왔었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내가 어릴 적 호기심에 데려온 것이 아니었고, 그 날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엄중히 금지되었으며,무엇보다 동물이 아닌, 분홍빛 머리카락의 어린 여자애였다.맨 처음 본 것은 집안 어르신의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다음 번에 보는 것...
최악이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도 모르는 일들로 저번 주 학생회 업무는 넘쳐나 5일 연속으로 뮤즈 연습도 못하며 하교 시간을 꽉꽉 채웠고 주말에는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일들로 아리사와 크게 말다툼을 해 오늘 아침까지 말 한 마디 못한데다가 학교에 와서는 다른 애들과 실실대는 노조미를 보고선 왠지 마음 속에 쌓여있던게 점점 부풀어올라 상관...
어릴 적부터 치카와 나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많은 것들을 함께 해왔지만 지금에 와서도 때때로, 특히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난관에 부딪힐 때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동경' 혹은 '존경'의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스스로를 수수하다, 평범하다고 말해지는게 입에 붙어버린 그녀에게 일종의 '히어로'와 같이 보이는 것은 기분 좋으면서도 어딘가 씁...
어릴 적부터 치카와 나는 여러 일들을 같이 했고 여러 곳에서 함께였다. 치카가 잘하는 것은 나도 잘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고 보다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치카의 표정을 보며 마음 속의 '행복 게이지'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내 머리 속에 치카 표정 사진집을 만들어 순간순간 다르면서도 어느 하나 전과...
처음 봤던건 해질무렵 바닷가였다. 지나가던 길에 치카의 목소리가 들려 다가가보니 어떤 낯선 여자애와 나란히 앉아있었기에 섣불리 다가가진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았다. 대충 흘러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니 치카도 처음 만난 듯 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 마음 속에 담아두던 얘기도 하는 듯 했다.오래 알고지낸 사이보다 초면인 관계가 오히려 ...
방과 후, 항상 집으로 향하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교사 1층 구석에 위치한 교내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랜 시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지 문을 열자마자 밖으로 퍼져나오는 운동장의 흙먼지같이 탁한 공기. 손으로 얼굴 앞을 내저으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불을 켜자 입학식 날 처음 봤던 그 모습과 어느 한 곳 변하지 않은 도서관이 나를 반긴다. 나무로 만들어진 7...
"...혹시 나이차이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늦은 시각. 주변에 지나다니는 다른 차들 없이 텅 빈 도로. 항상 내려주던 집 앞 사거리에 멈춘 차 안에서, 나는 감정에 휩쓸려 한껏 쏟아내고 있었다."솔직히 그렇게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더 많이 차이나는 커플도 얼마든지 있는걸요!아니면, 제가 학생이라서요...? 그러면 제가 졸업하면 마음을 받아 주...
편의점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 앞에 서게 되면 일단 망설여진다. 평소에 자주 마시던 걸로 할지, 아니면 계절마다 새롭게 나오는 한정제품을 선택할지 항상 고민한다. 냉장고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와 다르게, 망설임 없이 고르는 너의 선택은 언제나 흑맥주. 탄산도 적고 맛도 진해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런 흑맥주를 너는 언제나 선택했던 것 같...
여관 내의 온천에 다녀온 사이,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 들어버린 너의 숨에서 약간의 알코올 향이 느껴진다.그런 너의 주변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여러 색깔의 포장지.거의 비어버린, 멋들어진 금빛 영문 필기체로 'Whisky bonbon' 이라는 상표가 적힌 초콜릿 상자는 지금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한창 성수기라 바쁜 여관 일을 도와준 보...
홀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캐릭터를 잡아 연기하며 주변의 의식을 모으고, 자신의 눈 높이 위로 타인의 손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동급생들과 같이 온천은 커녕 수영 수업과 체육 수업에서 조차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여기까지는 의심. 다른 것들보다 결정적이었던건, 유난히 따뜻했던 봄의 점심시간. 날씨가 좋아 모두 밖에 나갔는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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